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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점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사교의 시간이고, 이탈리아에서는 가족의 시간이며, 스페인에서는 낮잠 전의 여유이고, 독일에서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한 끼이고, 영국에서는 간단하게 때우는 시간이다. 같은 유럽이지만 점심 한 끼의 의미는 나라마다 이렇게나 다르다.
프랑스에서 점심은 서두르지 않는다. 정오부터 오후 2시 사이에 이루어지는 프랑스의 점심식사는 전채요리(앙트레)에서 시작해 주요리를 거쳐 에스프레소로 마무리되는 구성이 기본이다. 밥을 먹는다기보다 식사 자체를 즐기는 시간으로 여기는 문화가 강해, 비즈니스 미팅도 점심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프랑스인이 매일 코스 요리를 먹는 것은 아니다. 파리 직장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점심은 바게트 샌드위치다. 바게트 사이에 햄·치즈·버터를 넣어 만드는 잠봉뵈르(Jambon-beurre)는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샌드위치로, 바게트 문화가 얼마나 일상 깊이 자리잡았는지 보여주는 음식이다. 여유가 있을 때는 동네 비스트로에서 오늘의 메뉴(플라 뒤 주르, Plat du Jour)를 주문해 합리적인 가격에 제대로 된 한 끼를 즐기는 것이 프랑스식 점심 문화의 정석이다. 미식가의 나라답게 어떤 방식으로 먹더라도 재료의 품질과 맛에 대한 기준은 타협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점심은 지역마다 전혀 다른 음식이 나온다는 점이 특징이다. 북부 밀라노에서는 리소토와 폴렌타가, 중부 볼로냐에서는 라구(고기 소스)를 얹은 탈리아텔레가, 남부 나폴리에서는 토마토 소스의 파스타와 피자가 점심 테이블을 채운다.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를 먹을 때 스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현지 예절이며, 카르보나라에 크림을 넣는 것은 로마 사람들이 절대 용납하지 않는 금기이기도 하다. 음식에 대한 지역적 자부심이 그만큼 강한 나라다.
전통적인 이탈리아 점심은 프리모(primo, 파스타·리소토 등 첫 번째 요리)와 세콘도(secondo, 육류·생선 등 두 번째 요리)로 나뉘어 순서대로 나온다. 현대 도시 직장인들은 시간 관계상 프리모 하나만 먹고 끝내는 경우가 많지만, 가족이 모이는 주말 점심만큼은 여러 코스가 천천히 이어지는 긴 식사가 지금도 이어진다. 이탈리아인에게 주말 점심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의례 중 하나이다.

스페인에서 점심은 하루 중 가장 큰 식사다.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이루어지는 점심식사는 수프·메인 요리·디저트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으며, 식사 후에는 시에스타(낮잠)로 이어지는 것이 전통적인 스페인식 리듬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저녁을 오후 9시 이후에 먹는 이유도 이 늦은 점심 시간과 맞닿아 있다.
타파스(Tapas)는 스페인 점심 문화의 또 다른 얼굴이다. 올리브·하몬(생햄)·토르티야(감자 오믈렛)·크로케타(크로켓) 등 한 입 크기의 작은 음식들을 여러 종류 주문해 와인이나 맥주와 함께 나눠 먹는 이 문화는 음식을 매개로 사람들이 어울리는 스페인만의 사교 방식이다. 바(Bar)에서 서서 타파스를 집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은 스페인 어느 도시에서도 낮 12시부터 시작되는 일상이다.

독일에는 “아침은 시민처럼, 점심은 왕처럼, 저녁은 거지처럼(Frühstücken wie ein Bürger, Mittagessen wie ein König, Abendessen wie ein Bettler)”이라는 속담이 있다. 다른 유럽 나라들이 저녁을 정찬으로 즐기는 것과 달리, 독일은 전통적으로 점심을 하루 중 가장 중요하고 푸짐한 식사로 여겨왔다. 산업혁명 시대 장시간 노동을 버티기 위해 점심을 제대로 먹어야 했던 역사적 배경이 지금의 독일 점심 문화를 만들었다.
독일의 전통 점심은 소시지·돼지고기·감자·자우어크라우트(양배추 절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독일 소시지는 종류만 200~300가지에 달할 만큼 독일 식문화의 핵심이며, 소시지와 감자를 조리하는 방법도 지역마다 다양하다. 현대 독일에서는 직장인들이 구내식당이나 근처 식당에서 ‘미타게센(Mittagessen, 점심식사)’ 할인 메뉴를 이용해 한 끼를 해결하는 문화가 자리잡았고, 젊은 층에서는 파스타·케밥·샐러드 같은 외래 음식이 점심 메뉴로 일상화됐다.

영국의 점심은 유럽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단연 간소하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되면서 빠르고 간편한 식사 방식이 정착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세계 최초의 샌드위치도 18세기 영국 샌드위치 백작이 도박을 하면서 손을 더럽히지 않고 먹기 위해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오늘날 영국 직장인의 점심은 슈퍼마켓이나 델리에서 사 온 샌드위치·수프·사라다로 간단히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 최대 샌드위치 체인 프레타망제(Pret a Manger)가 런던에만 수백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문화를 잘 보여준다. 반면 영국의 전통 점심 문화로는 일요일에 가족이 함께 즐기는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가 있다. 소고기·돼지고기 혹은 닭고기를 오븐에 통째로 구워 감자·당근·요크셔 푸딩과 함께 내는 이 식사는 영국인들이 한 주를 마무리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식문화다.

프랑스는 점심을 예술로, 이탈리아는 가족의 의례로, 스페인은 사교의 무대로, 독일은 하루의 중심으로, 영국은 효율의 시간으로 바라본다. 같은 유럽이지만 점심 한 끼를 대하는 철학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이 유럽 식문화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더 잘 말해준다.
[관련글: 세계의 점심 2편 — 동남아시아 5개국의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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