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점심 6편 — 오세아니아·아프리카 5개국의 한 끼: 호주·뉴질랜드·모로코·에티오피아·남아프리카공화국

세계의 점심 시리즈 마지막 편은 지구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아우른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넘어 오세아니아의 두 나라,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세 나라까지. 호주·뉴질랜드·모로코·에티오피아·남아프리카공화국의 평범한 점심 한 끼를 들여다본다.



호주 — 바비큐와 미트파이, 이민자들이 만든 다문화 식탁

호주의 점심 문화는 영국 이민자들의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음식 문화 중 하나로 꼽힌다. 아시아·유럽·중동 이민자들이 들여온 음식들이 호주 고유의 식재료와 결합하면서 독자적인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호주에서는 어느 도시의 푸드코트를 가더라도 태국 쌀국수·일본 스시·인도 커리·레바논 케밥·이탈리아 파스타를 나란히 만날 수 있는 것이 낯설지 않다.

미트파이와 베지마이트, 진짜 호주 점심

진정한 의미의 호주 고유 점심을 꼽자면 미트파이(Meat Pie)가 단연 첫 번째다. 갈은 소고기·양고기와 채소를 진한 그레이비 소스와 함께 파이 크러스트 안에 넣어 구운 이 음식은 편의점부터 스포츠 경기장까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호주의 국민 점심이다. 크리켓이나 AFL 경기를 관람하며 미트파이를 손에 들고 먹는 것은 호주 스포츠 문화의 상징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베지마이트(Vegemite)는 맥주 효모 추출물로 만든 짙은 갈색의 스프레드로, 호주인들이 빵에 발라 점심으로 즐기는 음식이다. 처음 맛보는 외국인들에게는 지나치게 짜고 쓴 맛으로 충격을 주지만 호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소울푸드이다. 공원마다 무료 바비큐 시설이 갖춰져 있어 주말 점심에 삼삼오오 모여 바비큐를 즐기는 것도 호주 점심 문화의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호주 점심
미트파이 (출처 : 제미나이 AI)

뉴질랜드 — 마오리 문화가 살아 있는 한 끼

뉴질랜드의 점심 문화는 호주와 비슷하게 영국 식민지 전통이 기반을 이루지만, 원주민 마오리 문화의 영향이 독자적인 색을 더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뉴질랜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청정 자연환경 덕분에 양고기·소고기·유제품·해산물의 품질이 뛰어나며, 이 풍부한 재료가 뉴질랜드 음식의 기반이 된다.

마오리 전통 조리법인 항이(Hāngī)는 뉴질랜드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다. 땅 속에 구덩이를 파고 달군 돌 위에 고기·감자·쿠마라(고구마)·호박을 올려 흙을 덮고 수 시간 동안 증기로 쪄내는 이 방식은 마오리족의 전통 요리 방법으로, 오늘날에도 중요한 축제나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항이로 익힌 음식은 특유의 흙내음과 훈연향이 배어 있어 오븐이나 일반 조리 방식과는 전혀 다른 맛이 난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미트파이가 일상 점심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원조가 뉴질랜드인지 호주인지를 두고 양국이 지금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모로코 — 지중해와 사하라가 만나는 점심, 타진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독특한 음식 문화를 가진 나라 중 하나다. 베르베르 원주민 문화에 아랍·이슬람·스페인·프랑스의 영향이 겹쳐지면서 지중해와 아프리카, 중동이 한 접시에 만나는 복합적인 요리 세계가 탄생했다. 타진(Tajine)은 모로코를 대표하는 점심 요리다. 원뿔형 뚜껑이 달린 도자기 냄비인 타진에 고기·채소·올리브·말린 과일·향신료를 넣고 천천히 끓이는 이 요리는 모로코 가정에서 점심마다 빠지지 않는 메뉴이다. 커민·생강·계피·사프란·고수가 어우러진 향신료 배합이 타진의 풍미를 결정하며, 가정마다 고유한 향신료 비율이 대대로 전해진다.

쿠스쿠스(Couscous)는 모로코의 또 다른 국민 음식이다. 밀을 곱게 빻아 만든 알갱이 모양의 쿠스쿠스는 고기와 채소를 얹은 스튜와 함께 먹는 것이 정석이며, 금요일 점심에는 가족이 모여 쿠스쿠스를 나눠 먹는 전통이 지금도 이어진다. 모로코는 세계에서 1인당 차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민트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 식탁에도 빠지지 않는 음료이다.

에티오피아 — 손으로 먹는 한 끼, 인제라와 왓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독자적인 음식 문화를 가진 나라로 꼽힌다. 이탈리아 식민 지배를 짧게 받은 것을 제외하면 외세의 영향이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보다 적어 고유한 전통 식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에티오피아 점심의 핵심은 인제라(Injera)다. 테프(Teff)라는 고대 곡물을 발효시켜 만든 얇고 스펀지처럼 구멍이 송송 난 납작한 빵인 인제라는 에티오피아 모든 식사의 기반이 된다. 인제라 위에 왓(Wat)이라 불리는 다양한 스튜를 올려 함께 먹는 것이 에티오피아식 점심의 기본 구성이다. 왓은 양고기·닭고기·채소·달걀 등을 베르베레(Berbere)라는 에티오피아 고유의 향신료 혼합물과 함께 끓인 것으로, 종류에 따라 맵고 강렬한 맛이 특징이다. 음식을 먹을 때 숟가락이나 젓가락 같은 도구를 쓰지 않고 인제라를 직접 손으로 뜯어 왓을 집어 먹는 것이 에티오피아 식사 예절이다. 같은 인제라 위에 여러 사람이 함께 음식을 집어 먹는 것은 친밀감과 공동체 정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 무지개 나라의 다채로운 점심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무지개 나라(Rainbow Nation)’라는 별명처럼 흑인·백인·유색인·아시아계가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이며, 이 다양성이 음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줄루·코사·소토 등 반투 계열 전통 음식, 17세기 네덜란드계 이민자인 아프리카너의 음식, 영국 식민지 시대의 영향, 말레이·인도 이민자들의 향신료 문화가 한 나라 안에 공존한다.

브라이(Braai)는 남아공을 대표하는 음식 문화이자 사회적 의례이다. 한국의 삼겹살 파티처럼, 남아공 사람들은 주말이면 마당이나 공원에 모여 소고기·양고기·보어보스(Boerewors, 전통 소시지)를 숯불에 구워 함께 먹는다. 브라이는 단순한 바비큐가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문화적 관습으로, 인종과 계층을 초월해 남아공 전체가 공유하는 문화이다. 빌통(Biltong)은 소고기나 양고기를 소금·식초·향신료에 절여 건조시킨 남아공식 육포로, 점심 간식으로 즐겨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17세기부터 이어진 전통 보존 식품이 현대 스낵 문화로 자리잡은 사례이기도 하다.

지구 반대편의 점심이 말해주는 것

호주의 미트파이, 뉴질랜드의 항이, 모로코의 타진, 에티오피아의 인제라와 왓,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브라이.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 다섯 나라의 점심은 서로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한 가지를 공유한다. 어디서 왔든, 어떤 재료를 쓰든, 함께 먹는다는 것이다. 음식을 나누는 행위가 공동체를 만들고 문화를 잇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라는 사실은 지구 어느 구석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관련글: 세계의 점심 5편 — 남아시아·중앙아시아 5개국의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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