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점심 5편 — 남아시아·중앙아시아 5개국의 한 끼: 인도·파키스탄·터키·우즈베키스탄·네팔

향신료의 대륙이라 불리는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이 지역의 점심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수천 년의 문명, 종교, 교역로의 역사가 응축된 한 접시다. 인도·파키스탄·터키·우즈베키스탄·네팔의 평범한 점심을 들여다본다.

인도 — 향신료 문명이 차린 한 상, 탈리

인도의 점심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은 마살라(Masala)다. 여러 가지 향신료를 조합해 만드는 마살라는 인도 요리의 기본이자 완성이며, 같은 향신료를 써도 조합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나온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파는 카레 가루가 바로 이 마살라가 대륙을 넘어 유입되면서 단순화된 것이다.

인도의 대표 점심 메뉴는 탈리(Thali)다. 넓은 금속 쟁반 위에 커리·달(렌즈콩 수프)·쌀밥 혹은 난(빵)·라이타(요거트 소스)·피클·처트니가 한꺼번에 올라오는 이 상차림은 인도 전역의 식당에서 만날 수 있다. 북인도에서는 밀 기반의 난과 로티를 중심으로, 남인도에서는 쌀과 삼바르(채소 커리)가 탈리의 중심이 된다. 인도는 채식주의자가 살기 가장 좋은 나라 중 하나로, 힌두교의 영향으로 채식 메뉴가 풍성하게 발달해 있다. 모든 식품에 채식(vegetarian)과 비채식(non-vegetarian)이 엄격하게 표시되는 것도 인도 식문화의 독특한 특징이다.

남북이 전혀 다른 나라, 지역마다 다른 점심

인도는 중국이나 유럽 대륙 전체에 필적할 만큼 광대한 아대륙이다. 북인도 펀자브의 버터 치킨 커리와 남인도 케랄라의 코코넛 피시 커리는 같은 인도 음식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맛과 재료가 다르다. 서벵골에서는 생선 요리가, 라자스탄에서는 달 바아티 처마(렌즈콩 요리)가, 구자라트에서는 순채식 탈리가 지역 점심 문화의 중심을 이룬다. 이 다양성이 인도 음식이 세계 미식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다.

인도의 탈리
인도의 탈리

파키스탄 — 커리와 난, 무굴 제국의 맛을 잇다

파키스탄 음식은 인도 음식과 뿌리를 공유하지만 이슬람 문화와 중앙아시아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독자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슬람교 기반 문화이므로 돼지고기는 금기이고 소고기·양고기·닭고기가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다. 건조한 기후 탓에 습지대 인도에서 주로 먹는 염소고기보다 양고기가 더 흔하고, 뼈까지 함께 끓여 깊은 육수를 내는 커리 방식이 발달해 있다.

파키스탄 직장인의 점심 대표 메뉴는 비리야니(Biryani)와 달(Daal)이다. 비리야니는 향신료로 양념한 쌀에 고기를 올려 함께 찐 요리로 파키스탄에서 축제와 일상을 아우르는 국민 음식이다. 달은 렌즈콩을 향신료와 함께 끓인 걸쭉한 수프로, 난이나 밥과 함께 먹는 가장 서민적인 점심 메뉴다. 파키스탄식 달은 그레이비에 콩가루를 넣어 더 진하고 고소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무굴 제국의 궁중 요리에서 비롯된 닭고기 커리와 꼬치 요리 카라히도 파키스탄 점심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다.

파키스탄 비리야니
파키스탄 비리야니


터키 — 동서양의 교차로에서 만들어진 점심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두 대륙의 음식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이다. 터키 요리는 오스만 제국의 광대한 영토에서 흡수한 다양한 식문화를 바탕으로 중동·지중해·중앙아시아의 요리 전통이 한 자리에 모인 결과물이다.

터키 점심의 상징은 케밥이다. 꼬치에 고기를 꽂아 숯불에 구운 쉬쉬케밥, 수직 꼬치에 양고기나 닭고기를 층층이 쌓아 회전시키며 구운 되네르 케밥, 납작하게 구운 고기를 채소와 함께 먹는 아다나 케밥까지 터키에는 수십 종류의 케밥이 있다. 되네르 케밥은 얇게 썬 고기를 빵에 넣어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직장인 점심으로 가장 많이 소비된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터키식 케밥 가게가 바로 이 되네르 문화에서 온 것이다. 케밥 외에도 렌즈콩 수프 메르지멕 초르바수는 터키인이 점심에 국물 대용으로 즐겨 먹는 음식이며, 얇은 빵 위에 다진 고기와 채소를 얹은 라흐마준은 터키판 피자라 불리는 또 다른 점심 메뉴다.

터키의 캐밥
터키의 캐밥

우즈베키스탄 — 실크로드가 남긴 맛, 플로프

우즈베키스탄은 역사적으로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거쳐 동서를 오가던 상인들의 흔적이 지금도 우즈베크 요리에 남아 있다. 중국에서 수입한 차, 인도에서 들어온 향신료, 이란과 중동의 요리 방식이 중앙아시아 유목 문화의 고기·빵·유제품 중심 식단과 결합하며 독자적인 요리 세계를 만들어냈다.

우즈베크 점심의 핵심은 플로프(Plov)다. 양고기·당근·양파를 기름에 볶은 뒤 쌀과 함께 솥에 넣어 끓여내는 이 쌀 요리는 우즈베키스탄의 국민 음식이자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이다. 결혼식·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는 수백 명 분의 플로프를 대형 솥에 한꺼번에 끓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화덕에 구운 납작한 빵 난(Non)은 모든 식사에 빠지지 않는 기본이며, 양고기 꼬치 샤슬릭(Shashlik)과 만두 형태의 삼사(Samsa)도 우즈베크 점심 식탁의 단골 메뉴다. 우즈벡 요리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오묘한 중독성이 있어 소련 시절부터 동유럽 전역에서 각광받은 음식이기도 하다.

우즈베키스탄의 플로프
우즈베키스탄의 플로프

네팔 — 히말라야 기슭의 소박하고 따뜻한 한 끼

네팔의 점심 문화는 인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히말라야 고산지대라는 자연환경이 빚어낸 독자적인 식문화를 갖고 있다. 네팔의 국민 음식이자 하루도 빠지지 않는 점심 메뉴는 달밧(Dal Bhat)이다. 달은 렌즈콩 수프, 밧은 밥을 뜻하며, 달밧은 쌀밥 위에 달·타르카리(채소 커리)·아차르(절임)를 얹어 먹는 구성이다. 네팔인들은 “달밧 파워 24아워(Dal Bhat Power 24 Hour)”라는 말을 쓸 만큼 이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여행자들도 산장마다 제공되는 달밧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모(Momo)는 네팔의 또 다른 대표 점심이다. 티베트에서 전래된 고기 만두인 모모는 양고기·닭고기·채소를 다져 넣은 속을 얇은 반죽으로 감싸 쪄내거나 튀긴 음식으로, 길거리 노점에서부터 레스토랑까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만두와 구조는 비슷하지만 히말라야 향신료의 향이 배어 있어 맛은 전혀 다르다. 최근에는 K팝과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네팔 젊은 층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카트만두 곳곳에서 한국 식당과 분식 메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네팔의 달밧
네팔의 달밧

향신료가 이어온 문명의 맛

인도의 탈리, 파키스탄의 비리야니, 터키의 케밥, 우즈베키스탄의 플로프, 네팔의 달밧은 모두 향신료를 중심으로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향신료를 찾아 세계를 항해했던 대항해 시대의 역사가 보여주듯 이 지역의 음식은 오래전부터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한 끼의 점심 안에 실크로드의 교역과 문명의 충돌이 녹아 있는 것이 남아시아·중앙아시아 점심 문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관련글: 세계의 점심 4편 — 아메리카 5개국의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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